사실 번역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자주 묻는 것이 왜 번역가가 되는 공식적인 루트가 없냐는 것이다. 그들 눈에는 알음알음으로 번역자가 된 사람들만 보이는 것같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운에 맡겨져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같다. 하지만 분명히 루트는 있다. 단지 일반적 직업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떻게 소설가가 되나요? 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대충 안다. 첫째 소설가 지망생들이 매년 많은 신문사의 신춘 문예를 통해 등단하는 방법이 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자동적으로 출간 기회가 주어지면서 소설가로 등단한다. 그 이후에 그 사람이 책을 내든 안내든 상관없이 말이다. 문예지를 통해서도 등단할 수도 있고 그냥 이런 과정 없이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여 출간할 수도 있다. 그래도 소설가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신춘 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면 실력있는 소설가로 어느 정도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저자 소개에 "신춘 문예 등단" 이라는 수식어구가 언제나 따라다니며 글의 품격을 높여줄 것이다. 미국 소설가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가렛 미첼은 평생 동안 10년에 걸처 딱 한 작품만을 썼고 수많은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지만 책은 나왔고 그녀는 명작을 쓴 작가가 되었다.
번역가도 마찬가지이다. 소설가와 다르다면 소설가가 완전한 창작을 하는 직업이라면 번역가는 일부만 창작으로 인정받을 뿐이다. 이 사람의 번역과 저 사람의 번역이 작품과 책의 판매를 결정지을 만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구별성이 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가만큼 상상력과 창의성이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책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번역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따르면 되지 않을까.
첫번째, 일단은 자격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어떤 번역이든 자격 조건은 잘 없다. 출판 번역 또한 마찬가지다. 공식적으로 자격이 요구되지 않는다 해도 이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은 사람이면 적어도 석사 이상은 갖추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학력 인플레가 심한 곳이 번역 분야이다. 역자 프로필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박사이다. 유학을 한 사람들도 많다. 번역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의 심리에는 적어도 나보다 학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이 번역한 것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어하는 인간의 편향이 작용한다. 학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경우 번역 능력만 갖추면 출판사에서 호감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출판사에 자신의 소개서와 책을 일부 번역한 내용과 함께 메일을 보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두번째 서울이나 경기도 권역에 산다면 일단 출판사에 취업하여 번역할 기회를 얻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같다. 처음 번역을 맡을 때는 출판사 일을 주로 하고 번역을 사이드로 하면서 번역료는 출판사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하면 출판사로서는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한번 맡겨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언어라는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 누가 선뜻 초보자를 쓰려고 하겠는가? 번역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문장 하나를 해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책의 난이도는 고르지 않다. 시작 부분처럼 비교적 쉬운 부분도 있지만 어려운 부분도 있다. 어려운 부분에 오면 전체적인 행간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한 페이지 번역을 잘했다고 책 전체를 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번역을 했는데 내용 파악이 잘 안되어 있어 재번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대신 두번째부터는 반드시 적절한 번역료나 원고료를 받아야 한다.
세번째 출판사에 자신이 기획한 책을 소개하는 방법이다. 가장 어려운 관문이면서 역자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이다. 출판사에서 기획한 책을 번역만 하면 많은 경우 출판사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 하지만 역자가 기획한 책이라면 원하는대로 관철시키는 것이 다소 쉽다. 하지만 이 경우의 단점은 기획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리고 작품을 기획하여 출판사에 보내봐야 답을 해주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출판사에서 즉시 피드백을 보내줄 것이다. 작정하고 번역가가 되고 싶다면 이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출판 동향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비슷한 작품이 잘 팔렸다면 출판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세계를 오랫동안 지켜본 바 출판업계의 앞날이 그렇게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1쇄가 3000부인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1000부를 찍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만큼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 출판사만 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번역가도 이것과 직결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번역가 처우는 20-30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 출판업 자체의 불황 앞에 번역가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출판업의 위기 앞에서 개인이 목소리를 높여봐야 출판사가 문을 닫는 결과밖에 초래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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